프리랜서로 IT 번역을 하는 건 별로 추천할 만한 일이 아니다.
일단 급여가 불규칙적이다.
보통 출판사들은 번역이 끝나고 돈을 주는데
(어떤 출판사는 책이 나온 후 주기도 한다)
보통 500페이지 책 한 권을 번역하는 데 드는 시간 등을 감안하면
매달 급여를 받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다.
두 번째로 매번 새로운 번역을 해야 한다.
예를 들어 한 번은 안드로이드 게임 개발 책을 번역했다
다음 번엔 아이폰 책을 번역하는 식이다.
그러다 보면 책 사이의 연계성도 떨어지고 그만큼 작업이 고되다.
세 번째로 한국 독자들은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다.
예를 들어 나는 '역자도 공범이다'라는 소리까지 들어봤다.
내가 무슨 범죄자도 아닌데, 공범 취급을 받다니..
책을 잘 번역해도 잘 해야 본전이다.
별점을 좋게 주거나 좋은 독자평을 써주는 독자는 솔직히 별로 없다.
네 번째로 말 그대로 비정규직이다.
IT 번역 프리랜서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 전세 대출을 받을 수 있을까?
글쎄...간단히 말해 월급이 매달 들어오지 않으면 은행 대출은 사실상 어렵다.
그럼 캐피탈 대출은? 그것도 6개월 정도 급여가 규칙적으로 들어와야 하는데
이것 자체가 아주 어렵다. 그 다음은 상상에 맡기겠다.
다섯 번째 이유는 독자들의 오해와 관련이 있다.
많은 독자들이 역자가 많은 돈을 받거나 책이 팔리는 만큼 돈을 받는다고 오해한다.
절대 그렇지 않다. 일단 책이 팔리는 만큼 돈을 받으려면 인세 계약을 해야 하는데
그런 계약을 하는 출판사는 거의 없다. 혹시 있다 해도 번역비 없이 인쇄 부수가 아니라
책이 팔리는 양에 따라 인세를 받게 될 테고, 요즘 IT 전문서 시장을 보면 차라리
번역비를 받는 게 나을 정도의 인세를 받게 될 것이다. 또 번역비는 장당 7,000원 ~ 10,000원이
업계 표준이다. 한 달 동안 500페이지 번역해도 350 ~ 500 정도 받는 거다. 그것도 세금 3.3%
떼고, 5월엔 종합 소득세도 뗀다. 이런 상황에서 매달 생활을 하려면 매달 새 책을 쉬지 않고
번역해야 하고, 그 와중에 독자들은 가끔씩 질문을 남기고, 개발 환경은 바뀌고, 책의 일부 내용은
더 이상 실행이 안 되기도 하고.. 이런 일들이 일어난다. 물론 독자들 입장에서야 책을 샀는데
제대로 안 되니 질문을 남길 수 있다. 그렇지만 역자 입장에서는 매번 몇 개월 전에 번역한 내용을
유지보수하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1. 우리나라 IT 전문서 독자들이 앞으로도 좋은 IT 전문서가 나오기를 바란다면 좀 더 관용적인
시선으로 IT 전문 번역서를 봐줬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 책 빌려보지 말고 커피 마실 돈으로
책 한 권씩 사주면 결국 그 혜택이 본인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2. IT 전문서 프리랜서로 일한다는 건 앞의 다섯 가지 이유를 다 듣고도
'이 정도면 할 만하겠네' 하는 생각이 드는 사람만 하면 좋겠다.
웬만해서는 말리고 싶다. 이건.. 내가 경쟁자(?)를 물리치고 이 시장을 독점하기 위해서
하는 얘기가 아니고, 그냥 진심으로 하는 얘기다.
3. 그럼 IT 전문서는 누가 다 번역해야 하나? 내 생각엔 전문 개발자가 하는 게 제일 좋다.
안드로이드 책은 안드로이드 개발자가, 유니티 책은 유니티 개발자가 하는 게 제일 좋다.
어색한 한국어나 불필요한 피동문은 편집자가 잘 수정해주면 된다. 이 경우 문제점은
개발자들이 일정에 쫓겨 번역이 제 때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인데
이건 출판사가 적당히 개발자를 압박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4. 무엇보다도 한국 IT 개발자들이 번역서보다 빠르게 개발서를 내놓는 게 더 좋다.
그럼 외국에 로얄티를 지불할 필요도 없고 어색한 문장도 (비교적) 없을 것이다.
이 글은 계정이 만료될 때까지만 보관하겠다.
-끝-
Posted by joshy21